* 갑골문의 발견과 사마천의 사기: 과거에는 하·은·주 3대의 역사가 전설처럼 여겨졌으나, 19세기 말 약재(용골)로 쓰이던 뼈에서 갑골문이 발견되고 해독되면서 사마천의 『사기』 기록이 매우 정확했음이 입증되었습니다.
* 봉건제도(주나라): 천자가 중앙에 있고 제후국들이 지방을 다스리는 주나라의 봉건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, 서양 중세,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지방 분권 시스템이었습니다.
2. 통일 제국과 고구려의 위상
* 진시황과 한나라: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운 진시황은 알렉산더처럼 정복에는 능했으나 통치 기반이 약해 금방 망했고, 이후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거쳐 한나라(한무제) 때 비로소 제국의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.
* 수나라와 고구려: 위진남북조의 분열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멸망했습니다. 수 양제는 100만 대군(보급 포함 400만)을 동원했는데, 이는 고구려가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니라 중국 중원 문명과 맞먹는 거대한 독자 문명권이었기 때문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. 당 태종 역시 연개소문에게 패배하고 후회했습니다.
3. 청나라와 조선의 잃어버린 기회
* 여진족과의 관계: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(여진)은 역사적으로 고구려/발해의 후예로 볼 수 있습니다. 그들은 중원 진출 시 조선에 형제의 나라로서 협조를 구했으나, 조선은 그들을 오랑캐로만 여겨 병자호란을 자초했습니다.
* 소현세자의 비극: 병자호란 후 인질로 간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개방성과 서양 문물(아담 샬 등)을 접하며 조선을 근대화할 비전을 가졌습니다. 그러나 귀국 후 인조에게 독살당하며 조선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습니다. 도올은 이를 조선 역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.
4. 중국의 근대 혁명과 한국의 조력
* 신해혁명과 신규식: 쑨원(손문)이 이끈 신해혁명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. 그는 쑨원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 혁명 세력과 깊은 유대를 맺어 상해 임시정부의 터전을 닦았습니다.
* 모택동과 장개석:
* 모택동(마오쩌둥): 북경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공산주의를 접했습니다. 도시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주체로 한 게릴라 전술로 혁명에 성공했습니다.
* 장개석(장제스): 쑨원의 후계자로 황포군관학교 교장을 맡으며 군권을 장악했습니다. 그러나 처가인 '송씨 가문(송미령 등)'의 부패와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했습니다.
5. 현대 중국의 구조와 시진핑
* 당-군-정 구조: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, 중국은 '당(공산당)'이 '국가'보다 우위에 있으며, 군대(인민해방군) 역시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입니다.
* 모택동의 과오: 건국 초기에는 훌륭했으나, 이후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많은 동지를 숙청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. 이는 처 강청과 간신 강생의 영향이 컸습니다.
* 시진핑 체제: 중국의 지도자는 밑바닥부터 단계별 검증(저구제)을 거쳐 선발됩니다. 시진핑은 부친 시중쉰의 후광도 있었으나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인물로, 당·정·군의 권력을 한몸에 쥔 강력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.
6. 결론
도올은 역사가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, 미·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(특히 한국 불교의 정신)이 중요한 정신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칩니다.
도올 이 말아주는 중국사 몰아보기! 하은주부터 시진핑까지
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강의한 중국사(하은주부터 시진핑까지)의 핵심 내용
1. 고대 문명과 역사의 재발견
* 갑골문의 발견과 사마천의 사기: 과거에는 하·은·주 3대의 역사가 전설처럼 여겨졌으나, 19세기 말 약재(용골)로 쓰이던 뼈에서 갑골문이 발견되고 해독되면서 사마천의 『사기』 기록이 매우 정확했음이 입증되었습니다.
* 봉건제도(주나라): 천자가 중앙에 있고 제후국들이 지방을 다스리는 주나라의 봉건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, 서양 중세,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지방 분권 시스템이었습니다.
2. 통일 제국과 고구려의 위상
* 진시황과 한나라: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운 진시황은 알렉산더처럼 정복에는 능했으나 통치 기반이 약해 금방 망했고, 이후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거쳐 한나라(한무제) 때 비로소 제국의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.
* 수나라와 고구려: 위진남북조의 분열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멸망했습니다. 수 양제는 100만 대군(보급 포함 400만)을 동원했는데, 이는 고구려가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니라 중국 중원 문명과 맞먹는 거대한 독자 문명권이었기 때문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. 당 태종 역시 연개소문에게 패배하고 후회했습니다.
3. 청나라와 조선의 잃어버린 기회
* 여진족과의 관계: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(여진)은 역사적으로 고구려/발해의 후예로 볼 수 있습니다. 그들은 중원 진출 시 조선에 형제의 나라로서 협조를 구했으나, 조선은 그들을 오랑캐로만 여겨 병자호란을 자초했습니다.
* 소현세자의 비극: 병자호란 후 인질로 간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개방성과 서양 문물(아담 샬 등)을 접하며 조선을 근대화할 비전을 가졌습니다. 그러나 귀국 후 인조에게 독살당하며 조선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습니다. 도올은 이를 조선 역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.
4. 중국의 근대 혁명과 한국의 조력
* 신해혁명과 신규식: 쑨원(손문)이 이끈 신해혁명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. 그는 쑨원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 혁명 세력과 깊은 유대를 맺어 상해 임시정부의 터전을 닦았습니다.
* 모택동과 장개석:
* 모택동(마오쩌둥): 북경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공산주의를 접했습니다. 도시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주체로 한 게릴라 전술로 혁명에 성공했습니다.
* 장개석(장제스): 쑨원의 후계자로 황포군관학교 교장을 맡으며 군권을 장악했습니다. 그러나 처가인 '송씨 가문(송미령 등)'의 부패와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했습니다.
5. 현대 중국의 구조와 시진핑
* 당-군-정 구조: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, 중국은 '당(공산당)'이 '국가'보다 우위에 있으며, 군대(인민해방군) 역시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입니다.
* 모택동의 과오: 건국 초기에는 훌륭했으나, 이후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많은 동지를 숙청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. 이는 처 강청과 간신 강생의 영향이 컸습니다.
* 시진핑 체제: 중국의 지도자는 밑바닥부터 단계별 검증(저구제)을 거쳐 선발됩니다. 시진핑은 부친 시중쉰의 후광도 있었으나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인물로, 당·정·군의 권력을 한몸에 쥔 강력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.
6. 결론
도올은 역사가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, 미·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(특히 한국 불교의 정신)이 중요한 정신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칩니다.